[6.10 촛불_01] 나.. 시청가야 되는데.. :: 2008/06/11 10:3221년전 6월 9일 연세대학교 앞에서 호헌철폐를 외치던 한 젊은이가 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대한민국 국사 교과서나 근현대사 교과서에는 실려있지 않지만, 시험에는 종종 등장하는 이 사건은.. 당시 독재에 시달리면서도 독재에 시달리는 줄 몰랐던 대다수의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지도 모른다. 그 젊은이의 이름이 '이한열'이다. 5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이제는 찌는 뜨거운 태양빛으로 바뀌던 6월.. 그 해 우리는 그렇게 뜨거웠다. 내리쬐는 태양도 녹여버릴 듯한 국민들의 열기로 다양한 문화로 하나됨을 목표로 모인 시민들.. 나중에 대한민국 민주주의 전환점에 한 획을 남길 2008. 6.10 촛불 대항쟁도 고 이한열 열사로부터 시작되는 건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의 공통점은.. 그저 내 자식이 탈 없이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가서.. 좋은 직장에.. 좋은 배필 만나.. 보편타당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을.. 지켜 보시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도 별 다르시지 않으셨으리.. 하지만.. 여자는 약하고 ..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장에서 열사의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오늘 제 아들의 장례식에 와 주신 많은 분들 감사드립니다. 우리 아들이 다 이루지 못한 우리 나라의 민주화를 여.러.분.들이 꼭 이루어 주세요. 라고 ... 21년이 지난 지금 6.10 촛불 항쟁은... 연세대의 고 이한열 열사 추모제로 하루를 열어갔다. 21년 전을 돌아보시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다시 전하셨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프고 힘들면 '엄마'를 찾기 마련인데.. 우리 아들이 마지막 남긴 말은 '엄마'가 아니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약간은 서운했던 우리 아들의 마지막 말은.. '나 시청 가야 되는데.. ' 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섭섭하지만, 엄마보다도 시청 가는 것이 더 중요했나 봅니다. 다행이 오늘 연세대 후배들이 한열이와 함께 시청으로 가준다니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시청을 후배들과 함께 가는 내 아들이 자랑스럽고 여러분이 고맙습니다. 내 아들이게 그런 기회를 줘서 너무도 감사합니다. 어제 그들은 무사히 시청에 도착했을까? 출발한지 21년만에 이한열 열사는 시청에 도착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Posted by Byul_DaBang 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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