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놓고 읽지 않는 책이 쌓여 간다. 한 번 입고 개어 놓은 옷들이 자취를 감췄다. 언젠가는 먹겠지 하고 얼린 냉동고의 음식들은 원래의 정체를 잃었다. 한 번 볼까? 하는 의미 없는 인사는 발자취도 남기지 않는다. 요즈음, 나는 자주 잊는다. 약 때문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알 길은 없다. 과거의 나는 머릿속에 체크리스트 같은 것이 있었다.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지워가며 작은 일 하나 빠뜨림 없이 챙겨 왔다. 다 기억 못 할 것 같으면 어디든 기록해 놨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처럼 여겼다. 나는 요즈음, 자주 잊는다. 집 안에서도 두세 걸음 걷다가 내가 어디로 무엇을 가지러 가는지 잊는다. 그럴 땐 가만히 서서 마른세수를 하거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어 넘긴다. 그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