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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다

외롭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롭다. 하지만 외롭다고 말할 수 없는 외로움 보단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외로움이 조금 더 낫기에 혼잣말이라도 해보는 거야. 외롭다. 하지만 외롭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 그러면 더 외로워지는 것 같거든. 외로워도 안 외로운 척하는 게 조금 더 나아 보여. 안 외로운 척하면 그럴듯한 인생을 그럴듯한 수준으로 견디며 살고 있는 그럴듯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외로움을 티 내는 건 비참한 일이고 비참함은 외로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들지. 외로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고 외로움이 쉽게 덜해지진 않아.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끝도 없이 외로워지다 보면 비로소 완전히 외로워질 수 있어. 완전한 혼자가 되는 거지. 완전한 혼자가 된다는 건 뭘까.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나를..

나의 슬픔 2023.01.19

살고 싶지 않아

나는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선택해서 태어난 삶이 아닌 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너무나 많은 힘이 든다. 때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다. 그런게 삶이라고 나에게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 손가락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그러나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죽음을 떠올리면 아득하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나를 인지할 수조차 없다는 것. 소멸이라는 것은 공허하고 참담하고 슬프다. 나는 외로움은 참을 수 있지만 죽음은 참지 못할 것만 같다. 이렇게 나는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영원히 맴돌 것 같다.

나의 슬픔 2023.01.16

사랑의 모양

사랑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인지 골똘히 생각해 본다. 원으로부터 각을 하나씩 늘려 나간다. 원, (이각형이란 건 없으니까) 그다음은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사랑은 어떤 모양일까. 그러고 보니 사랑의 모양이라고 쓰는 익숙한 도형이 있다. 위쪽 가운데가 콕 찍혀 파인, 마치 원뿔 두 개를 뒤집어 붙여 놓은 듯한 모양. 하트라고 부르는 그것. 왜 사랑은 하트 모양일까 생각해 본다. 왜 하트 모양이라고 부르는지, 사랑 모양이라고는 부르지 않는지도 생각해 본다. 하트는 그냥 심장의 영문 표현일 뿐인데. 나는 이리저리 생각을 해보다가 인터넷에서 하트 모양의 기원을 검색할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관둔다. 대충 무엇으로부터 유래하여 심장의 모양이 어쩌고 저쩌고 하겠지.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나는 ..

나의 위안 2023.01.13

나는 네가

너는 잠들어 있겠지 나는 네가 보고 싶다 우리가 함께한 짧은 나날은 영원 같았다 깍지 낀 손 내 숨결이 닿는 너의 이마 빈틈없이 서로를 안고 있을 때 우린 세상에 없었지 우리가 서로의 세상이었지 그립다는 말로 애틋하다는 말로 너를 향한 이 마음을 다 채우지 못한다 나도 그렇듯 너도 그렇다 우린 기약할 수 없었던 하루를 접어 보내고 또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잠을 청한다 꿈에서 만나길, 그저 소망하며

나의 슬픔 2023.01.13

나는 부끄러워

나는 내 마음이 부끄러워 나의 그림자 뒤에 숨는다. 숨을 수 없다. 그래도 숨어본다. 나의 마음을 쓰는 일은 왜 이렇게나 어려울까. 누구에게나 진심은 그런 걸까. 나는 나의 진심이 적잖이 부끄럽고 애처롭다. 그래서 숨는다. 왜 떳떳하지 못하냐고 타박한다. 내가 나를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어. 나는 작고 작은 나일 뿐이야. 나는 누군가 쳐다보면 여전히 얼굴이 발그랗게 달아오르고, 누군가를 상처 줄까 봐 걱정에 걱정을 얹는 그런 작은 사람이야. 그러고 보니 나는 일곱 살의 나로부터 조금도 자라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하며 일곱 살의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그러면 용기가 생길까? 용기는 누가 주어야만 나에게 생기는 걸까? 진심이 부끄러워 그림자 뒤에 숨는 밤은 이토록 길다. 나..

나의 슬픔 2023.01.13

그거 아니

너는 그거 아니 나는 여전히 어두워진 밤에 홀로 앉아 어두움을 차분히 응시하곤 해 밝은 것 하나 없이 어두움을 바라보다 보면 어두움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도 눈앞에 생생해 너는 그거 아니 내가 너에게 보내는 많은 말들보다 훨씬 더 많은 말들이 내 마음 속에 깊이 담겨있다는 거 모를 거야 너는 그 말들이 네게는 부담일까봐 오늘도, 말 못하고, 어두움만 바라보는, 나의 맘을

나의 슬픔 2023.01.11

횡단보도를 건너며

횡단보도 빨간 신호등에서 기다리며 나는 어느 차에 뛰어들어야 확실하게 죽을 수 있을지, 어떤 운전자에게 덜 미안함을 느낄지 상상한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차들은 쌩쌩 내 앞으로 스쳐간다. 일부러 넘어지는게 좋을까, 아니면 실수한 듯 넘어질까. 그러던 새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뀐다. 그럼 나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횡단보도를 건넌다.

나의 슬픔 2023.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