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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는 곳

장초연 2023. 3. 19. 15:23

다 마신 페트병을 가만히 보다가 뜯는 곳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을 봤다. 뜯는 곳이라고 되어있지만 뜯기 어렵게 되어있다. 단단한 비닐 재질이다. 잘못 손대면 오히려 손톱이 들린다. 조심해야 한다. 부드득하고, 힘을 주어 잘 떼어내면 페트병을 감싸고 있던 껍데기가 떨어져 나간다. 그러고 나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길이 없어진다. 투명한 페트병만 남는다. 아이덴티티가 없어진다.

 

어쩌면 뜯는 곳이라고 써 있지만 뜯기 어렵게 되어있는 이유는 아이덴티티가 없어지기 싫어서 아닐까. 똑같이 생긴 투명한 페트병들끼리 모여져 부서지고 갈아져 다시 태어나기 싫어서 인 것 아닐까. 어쩌면 페트병은 자기 자신인 채로 버려지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