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안 6

낯선 삶을 살며

내 삶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을 때 나는 숨을 쉬는 일마저 버겁다 달려오는 차를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건너다 화난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해도 멍하게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나는 이 낯선 삶에서 길을 잃었다. 애초에 길은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내게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고 그것들을 애써 끌어모아도 결국 못난 나 자신일 뿐이다. 익숙한 삶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나의 앞에 능숙하게 솟은 커다란 나무 한 그루 나는 어깨를 잠시 기대어 그 편에 쉰다.

나의 위안 2023.04.14

글을 토해

나는 오늘도 쉴 새 없이 글을 토해. 그게 숨 쉬는 것인 양 그렇게 해. 그렇지 않으면 숨을 쉬고 싶지 않을까 봐 그래.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때 모든 생각이 떠올라서 힘들어. 그래서 뭐든 해. 대개는 누가 시키지 않은 일까지 맡아서 해. 그래야만 살 수 있으니까 이해해 줘. 정신없이 바빠야해. 숨 돌릴 틈도 없어야 해. 일을 해야 해. 글을 써야 해. 생각아 멈추면 안 돼. 빨리, 더 빨리 떠올려. 뭐든 떠올려, 뭐든 써야 해. 글을 토해. 신물이 나오고 내장이 다 튀어나올 정도로, 멈추지 마. 멈추면 안 돼. 멈추면 그때가 바로.

나의 위안 2023.02.23

꽃 줄기를 자르며

때때로 꽃을 산다. 그러나 금세 시들곤 했다. 어느 날엔가 프리지아 한 다발을 샀다. 반쯤 피어있고 반쯤은 피지 않은 봉우리였다. 플로리스트가 말했다. "줄기를 매일 잘라주시면 모든 꽃이 다 피는 걸 보실 수 있어요." 나는 의아했다. 줄기를 자르면 안좋은 거 아닐까. 꽃이 아프진 않을까. 나는 플로리스트의 말대로 매일 줄기를 잘라 줬다. 절삭력이 좋은 가위로, 사선으로 깊이, 물속에서 잘라줘야 한다고 해서 그 말을 따랐다. 생살을 자르는 것처럼 아플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질끈 감고 잘랐다. 후두둑 하고 잘린 줄기들이 떨어졌다. 남은 줄기는 깨끗한 수관이 열려 물을 더 잘 흡수했다. 프리지아는 모든 꽃을 피웠다. 아픔을 느낀 건 나 혼자만일 수도 있다. 프리지아는 더 오래 살아남았다. 나는 근거없..

나의 위안 2023.02.04

사랑의 모양

사랑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인지 골똘히 생각해 본다. 원으로부터 각을 하나씩 늘려 나간다. 원, (이각형이란 건 없으니까) 그다음은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사랑은 어떤 모양일까. 그러고 보니 사랑의 모양이라고 쓰는 익숙한 도형이 있다. 위쪽 가운데가 콕 찍혀 파인, 마치 원뿔 두 개를 뒤집어 붙여 놓은 듯한 모양. 하트라고 부르는 그것. 왜 사랑은 하트 모양일까 생각해 본다. 왜 하트 모양이라고 부르는지, 사랑 모양이라고는 부르지 않는지도 생각해 본다. 하트는 그냥 심장의 영문 표현일 뿐인데. 나는 이리저리 생각을 해보다가 인터넷에서 하트 모양의 기원을 검색할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관둔다. 대충 무엇으로부터 유래하여 심장의 모양이 어쩌고 저쩌고 하겠지.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나는 ..

나의 위안 2023.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