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안

꽃 줄기를 자르며

장초연 2023. 2. 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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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꽃을 산다. 그러나 금세 시들곤 했다. 어느 날엔가 프리지아 한 다발을 샀다. 반쯤 피어있고 반쯤은 피지 않은 봉우리였다. 플로리스트가 말했다. "줄기를 매일 잘라주시면 모든 꽃이 다 피는 걸 보실 수 있어요." 나는 의아했다. 줄기를 자르면 안좋은 거 아닐까. 꽃이 아프진 않을까. 나는 플로리스트의 말대로 매일 줄기를 잘라 줬다. 절삭력이 좋은 가위로, 사선으로 깊이, 물속에서 잘라줘야 한다고 해서 그 말을 따랐다. 

 

생살을 자르는 것처럼 아플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질끈 감고 잘랐다. 후두둑 하고 잘린 줄기들이 떨어졌다. 남은 줄기는 깨끗한 수관이 열려 물을 더 잘 흡수했다. 프리지아는 모든 꽃을 피웠다. 아픔을 느낀 건 나 혼자만일 수도 있다. 프리지아는 더 오래 살아남았다.

 

나는 근거없는 직관만 있었다. 깨끗한 물을 매일 잘 갈아주면 꽃이 오래 사는 줄 알았다. 물속에 담긴 줄기의 단면의 수관이 막히고 썩는 줄도 모르고 꽃과 플라워샵의 관리를 탓하기도 했다. 

 

혹시, 나 역시 내가 발딛은 곳의 물만 갈아주며 썩어가고 있던 걸까. 나는 나의 어디를 어떻게 잘라야 할까. 내가 피우는 꽃은 어떤 색깔과 향기를 지녔을까. 아니, 굳이 피우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어차피 나도 언젠가는 시들 텐데, 무의미한 발버둥일까. 이제 한 두 번 정도 남은, 마지막 줄기를 자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어차피 꽃은 영원하지 않고 줄기는 자르면 자를수록 짧아진다. 꽃줄기를 자르며, 꽃을 피우며, 나는 이것이 삶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하나의 생각을 더 한다.

프리지아는 줄기를 잘리면서까지 모든 꽃을 피우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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